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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삶과 죽음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1)

by bigthing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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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85세에 병원에 들어가 계신 아버지의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올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는 하는데 간호사들이 아버지가 다른 분들과 싸우셨어요 라던가 뭔가가 드시고 싶으시다고 해요 같은 내용일땐 안심하면서도 이 철없는 아버지 같으니 하는 생각을 하고 끊고는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내용이었다.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셨었다는 것이다. 상태가 좀 나아지셨다는 말과 함께였지만 당연하게도 이미 흐트러져버린 마음에 옷을 챙겨입는지 마는지도 모르고는 잽싸게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평소와 똑같은 길. 병원을 경유지로 놀러가는 동선을 짜곤 했던 일이 많아서 언제나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가곤 했던 일이 다반사였던 우리의 자동차 이동은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이외에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 적막했다. 아니 적막함이 라디오 소리를 덮어 버렸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만난 병원 상주 의사의 설명은 간결했다. 전화로 간호사가 이야기 한 내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말을 다시 들려 주었고 전화로 했던 그 말 그대로 빨리 응급실이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 보시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좀 나아지셨지만 혹시라도 다시 경련이 있으실 수 있다고.
 
그렇게 주치의와의 면담이 끝나자 마자 내려오신 아버지는 다행하게도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이셨다. 안정제를 맞으셔서 나아지셨는지 조금 졸려 하시기는 했지만 이야기도 잘 하시고 계셨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하셨지만 다양한 검사들을 해야 하기에 물을 드리지 못하자 엄청나게 투정을 부리시는 것을 보며 평소의 아버지와 비슷하시구나 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고 하면 오버일까?
 
병원에서의 권유에 따라 우리는 급하게 아버님을 모시고 근처의 응급실이 있는 병원으로 이동을 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의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전광판에 떠있는 응급실의 환자들은 대부분이 80대 노인들이었다.그나마 50대가 2명 정도?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는 졸고 계셨고 휠체어가 움직일때만 잠깐 고개를 들고는 주위를 보실 뿐 역시나 안정제의 효과인지 계속 꾸벅거리고 계셨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응급실 접수를 받는 분의 말로는 현재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있는 상태이고 치료를 하건 뭘하건 2~3일간 입원해서 지켜봐야 하는 증상인데 현재 우리 병원에는 남은 병실이 없으니 검사를 하더라도 입원이 불가능하니 차라리 다른 병원을 가시라는 말이었다.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옮긴 병원이라고 뭐 다를까? 하지만 이미 이곳 응급실보다는 다른 곳을 가시는 것이 낫겠다는 응급실 담당 의사의 소견이 떨어진 이상 힘없는 평민은 그 지시를 따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말했듯 다른 조금 큰 병원의 응급실을 찾아 간들 치료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테니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까? 뭐라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 그래도 꽤 큰 병원이니 일단 진료라도 받아 보자라는 생각에 신경외과에 접수를 했다. 다행히도 진료를 봐 줄 수 있는 의사가 있었는데 진료 후 담당 의사는 자신도 지금 상황에서는 어찌 할 수 없고 소견서를 써줄 테니 응급실 접수를 하면 아마 검사를 해 줄것이라며 우리를 응급실로 돌려 보냈다.(참고로 일반적으로 이렇게 바로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면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서울에서 직접 진료를 받기 위해 응급실이 있는 대형병원을 가는 경우 그러했다. 손님이 가장 많은 소화기내과등의 경우 3~4시간은 기본인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거긴 한데 경련을 일으킨 원인이 뭔지를 찾기 위한 검사같은 것은 하나도 없이 의사의 진료를 받겠다고 머리를 들이민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했다. 뭔 데이터가 있어야 진료를 보고 말고 하지. 하지만 아버지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혹은 아파질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반쯤은 패닉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성적인 생각이 날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저 머리속에는 도데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응급실에서 봐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응급실로 다시 가라고? 같은 내적인 반항심과 함께 최대한 빨리 다른 병원을 찾아 봐야겠다는 급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응급실에 접수를 했는데 아니 이번에는 접수를 받아주는 것이 아닌가? 
 
사실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반 진료를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응급실의 침대가 한두대 정도 비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사람들은 계속 왔다가 중환자실과 일반치료실로 계속 옮겨지는 중이었고 혹 남는 병상이 없는 경우 그대로 응급실에서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환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병원은 곧바로 MRI, CT, 엑스레이, 혈압, 체온, 피검사 등의(정확히 MRI는 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검사를 시작했다. 난 그저 응급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다른 검사실로 갔다가 돌아오는 아버지의 이동하는 모습만을 몇번 바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검사가 진행이 계속 되는 동안 어딘가 빠져 나가있던 것 같은 나의 영혼이 대기실에서 앉아 있던 순간부터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건 요양병원에서 그래도 크게 아프지 않은 모습의 아버지를 본 순간 안심함과 동시에 아주 약간씩이나마 돌아오긴 했던 것 같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일까? 마음의 안정이 되었는지 아니면 진짜 이 상황이 순식간에 적응이 된건지 이제는 저정도 나이면 이제 인지능력이 떨어지실 때도 됐지. 바이든이 어쩌구 트럼프가 어쩌구 하면서 헛소리를 작렬할 정도가 되었고 심지어는 손톱이 빠져 병원 응급실을 갔던 상황과 요로결석에도 불구하고 옆구리를 붙잡고는 새벽에 병원 응급실을 다녀온 일 같은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나불대고 있었다.
 
요양병원에서의 입원으로 인해 이미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있어 이곳에서의 검사비등은 모두 실비이며 비용은 130만원이 기본에 다른 검사가 더 붙으면 비용은 더 올라간다는 말에도 열심히 싸인을 했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도 간사한 것인지 이쪽에도 의료보험 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선 돌아가고 있었다.
 
접수과에 물어보자 어차피 이곳에서 2~3일 혹은 길게는 일주일까지 입원해 있을 거라면 요양병원에서 퇴원 처리를 하고 이곳으로 진료를 온것으로 하면 바로 의료보험 처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아픔이나 어려움 보다는 지금 당장 나가야 할 병원비가 더 걱정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나에 대한 자책이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다.
 
85세의 나이. 어떤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 가시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마음은 아버지가 어떻게 될까봐 불안해 전화 한통에도 덜덜 떨며 전화를 받고 있었고 큰 병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과 근심에 그래도 저정도면 다행이다 싶은 약간의 마음속 안심 그리고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차례로 밀려와 머리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후 내내 난리친 결과는 응급실의 입실과 입원을 위한 대기로 이어졌고 당장 4인이 사용하는 일반 병실이 나오지 않아 응급실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게 저녁까지 대기했지만 결국 입원실은 당장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대로 응급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내일을 기약해야먄 하는 상황이 되었다.(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2인실이나 1인실은 있었지만 어차피 4인실로 들어갈테니 이리 저리 이동하느니 이곳에서 그냥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배고픈지도 잘 모르겠던 몸은 긴장이 풀린 듯 미친듯이 위장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나 역시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내일 다시 또 와서 병원일을 처리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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